역사

10월 16일 바로 그날, 젊은 차부제(次副祭)인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는 새 단체를 만들려는 모임을 개최하였습니다. 여섯 명의 수사와 동행한 그는 시작 기도를 마친 후, 알렉산더 바실 신부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교황 성하의 개인 고해 신부인 바실 신부가 자기는 교황께 개인적으로 마리아 기사단의 일원으로 있겠다고 선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기사단의 계획이 이미 포함되어있는 것이지만, 기사단의 주요 목적, 입단의 방법과 그 조건에 참여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항들은 각각 논의된 것이고, 그래서 참가자들의 면면이 이 계획에서 믿어야 할 그들의 신뢰, 신앙 그리고 사랑을 반영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어떻게 하면 마리아를 통해 영혼들을 구하고자 하는 계획을 이루기까지 열심히 공들여 일했습니다….. 사실, 그 모임에는 의장이 없었고, 두 개의 꽃불이 켜진 성모상 옆에 원형으로 둘러 앉은 수사들이 있었을 따름이었습니다.

설립모임에 참여한 막시밀리안 콜베와 그의 동료 수사들은 최초의 마리아 기사단이었습니다. 기사단의 시작으로서 출발한 이날은 1917년 10월 16일이라고 생각됩니다.

1919년 3월 28일 베네틱토15세 교황은 마리아 기사단원들에게 강복을 하였고 그 후 바로 프란치스코회 총장인 도미니크 타바니 신부에게 강복 서한을 주셨습니다.

1920년 1월2일, Basil Pompilj 추기경은 기사단을 가톨릭교회의 일부로서 공인하고 승인하였습니다.

세상이 참으로 요동치고 있고, 교회의 적들이 저지르는 독성으로써 점점 더 무자비해지고 있는 것을 보던 막시밀리안 콜베는 모든 값지고 영예로운 방법으로써 성모님의 승리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회원들로 구성된 형제회를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여러 사례들이 보듯이, 생활의 다른 상태와 여건 속에서 모든 유효하고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각자의 열정과 신중함에 신뢰감을 주는 것입니다. 특히 권장되는 것은 기적의 메달을 널리 퍼트리는 것입니다.

주요 목적은: “모든 죄인들, 이단과 종교분열, 유대인의 등.. 특히, 프리메이슨의 회두를 위해, 그리하여 저들 모두가 하자 없으신 마리아의 중재를 통하여 성인이 되길 위해 일한다.”는 것입니다.

하자 없으신 마리아 군대를 설립하고자 하는 막시밀리안 성인의 직접적인 이유는 로마에서 발생한 프리메이슨 설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데모였습니다. 로마 시장이자 프리메이슨 그랜드 마스터인 어니스트 나탄은 이 기념식을 거행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미카엘 대천신이 루시퍼의 의기양양한 발굽 아래 굴복되어있는 모습을 그린 지오르다노 브루니스티의 검은 깃발을 든 채, 데모꾼들은 “사탄이 로마를 통치할 것이며, 교황은 그의 종(奴)이 되리라”고 외쳤습니다.

막시밀리안 성인께서 하자 없으신 마리아 기사단을 설립하고자 결심을 한 또 다른 사건은 마르틴 루터의 개혁 400주년 기념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치욕스런 기념식은 1917년을 지배하지 못했으니, 당시 가톨릭교회는 알폰스 라티스본에 발현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75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인 알폰스 라티스본은 기적의 메달에 나오는 유사한 모습을 한 성모님이 그에게 발현하신 후 1842년 회두하였습니다. 친구의 요청에 “그 발현이 증명이 된다면 받아드리겠다고 동의하고” 나서 발현이 있기 한 달도 채 안되어 그 친구로부터 기적의 메달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저녁에 성모님께 드리는 성 베르나르가 지은 기도를 암송하였습니다.

막시밀리안 성인은 알폰스 라티스본의 회두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하였으며, 성모님의 기적적인 권능의 사례로서 무신론자, 자유주의자들의 회두를 확인하였습니다.

설립자의 소망에 따라, 마리아 군대는 지상에서의 천주님의 왕국의 명분이 신성하다는 모든 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1937년 이후 마리아 군대는 또한 마리아 기사단으로도 불립니다.